2017년 12월 19일 화요일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1480

눈을 뜨니 불안감에 다시 잠은 안오고...
그래서 잠자리에 있기가 왠지 불안해서 거실로 나와 뒤척이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이런걸 공황 장애(지금은 TV에서도 많은 연애인들이 이런 표현을 쓰던데, 그땐 이런 증상이 병인지도, 뭐라고 하는지도 몰랐어... 그냥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이런 증상이 계속되자 새벽에 잠이 깰까하는 걱정으로 잠자리가 두려웠던 때였다.   이후 어떻게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간혹 오늘처럼 새벽에 잠이 깨면 그때의 불안했던 기억이 문득 스친다.

하지만 오늘 새벽, 잠에서 깨자마자 정신도 맑고 기분도 좋다.   '뭐지, 이런 느낌?'  싶으며 뒤척이다가 일어났다.   언젠가 '새벽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가장 큰 은총이다'라는 공지영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며 먼소리냐 싶었는데, 막상 새벽에 눈이 떠지자 뜬굼없이 그 기사 생각이 났다.    

춥고 캄캄한 새벽에, 처음으로 새벽 미사를 나섰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 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의 아들을 낳아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중략)...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1]
[1] 루카복음 1장 5절~25절

오늘 복음말씀이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니 슬슬 예수님의 탄생 준비를 하나보다 싶었다.   그래, 이제는 그 유명한 세레자 요한이 늙고 아이가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는 기적같은 일이었다는 밑밥을 깔때가 되었겠구나... 싶다가, 놀랐다.   "에이~ 설마요" 하는 듯한 즈카르야의 반응에 신비주의에 싸여있어야 할 것 같은 이 천사, 느닷없이 소속과 임무를 까고 심지어 해꼬지까지 해버리고 가버리는 거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이런 상황은 뭘까 싶었는데 생각났다.   이건 몰래 술먹고 노는걸 훔쳐보다가 들켰다고 그냥 보내도 될껄 혹붙이고 가는 도깨비랑 뭐가 다른거냐.

도메니코 기를란다요[2], 1449년에 태어난 이탈리아 화가다.    금속 화환을 만드는 아버지에게서 금 세공사일을 배우며 가계를 방문한 손님들의 그림을 그리다 그 솜씨가 좋아 피렌체로가 그림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그림의 구도보다는 디테일한 표현이 더 좋은화가로 피렌체에서 잘나가는 화가였다고 도 한다.    그런데 이 화가, 본인의 그림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있다.   미켈란젤로를 가르쳤다는 거다.(그는 미켈란젤로를 화가보다는 훌륭한 조각가로 평가했다고 한다).   
[2] 도미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르네상스 시대에 같이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전기를 써 더욱 유명해진 조르조 바사리[3] 는 기를란다요의 많은 작업과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동시대에 가장 훌륭한 주인공 중 한명이라 평가하기도. (그런데 신기한 나무위키를 찾아보면 제자와 비교당하면서 위키피디아 등에서 많이 씹혔다고 써있어 찾아봤는데, 그런 내용은 어디?)
[3] 조르조바사리(Giorgio Vasari), 1511년에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태어나 미켈란젤로의 친구이자 제자(어쩌면 그래서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에 대한 평가가 좋았을지도...) 로 메디치가문의 원조를 받으며 예술활동을 했다.   1550년에 르네상스 예술가 200여명의 삶과 작품을 기록한 '미술가 열정(Le Vita De' Piu Eccellenti Architetti, Pittori, et scultori)'[4]을 출판해서 미술사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4] 국내에는 1986년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이라는 제목으로 초역, 출판되었고, 2000년에 '이태리 르네상스의 미술가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한명출판사에서 재간행되었으나 모두 품절이라고 하는데 확인은 못해봄

영화의 감독 키메요 출연처럼, 이 그림을 그리며 도메니코 기를란다요는 자신의 자화상을 넣었단다.  어디?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동방박사의 경배' 1488
<출처: 위키미디아>
자신의 자화상을 늦은 나이에 그렸구나... 이래서 어르신들이 사진을 안찍으려 하는건지도.
조르조바사리 작, 자화상1550~1567 추정
<출처: 위키미디아>

이 미켈란젤로의 스승이 1480년에 가브리엘 천사에게 해꼬지 당하는 즈카르야의 모습을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라는 이름으로 그렸다.    흰 백발과 수염으로 인자해 보이지만 무덤덤한 표정을 한채 열심히 성물을 휘두르며 무심한듯 천사를 바라보는 즈카르야의 표정과, 이런 즈카르야를 매의 눈으로 째려보며 손가락질까지 하고 있는 천사 가브리엘의 모습이 미소짓게 한다.    즈카라야가 분향중인 성소의 건축물 조각과 황금으로 표현된 분향대의 모습에서 참 화려하게도 그려놨구나하며 더불어 천사의 날개도 흰색만 있는건 아닐 수 도 있겠구나(게다가 이 천사의 날개는 겉면은 황금색, 뒷면은 녹/적/황토색이 섞여있다!) 하는 생각도 잠시, 그림 주변에 떼로 서있는 이들은 뭔가 싶다.

살펴보니 조반니 토르나부오니(Giovanni Tornabuoni)[5]라는 당시 유명한 피렌체의 재벌과 그 일행이 그림의 중앙 왼쪽에 무리져서 즈카르야를 쳐다보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프란시스코 사세티(Francesco Sassetti)[6]라는 역시 당시 유명한 메디치가문의 은행가와 그 일행도 무리져 있다.        뿐만아니다.   왼쪽 아래쪽에는 즈카르야의 제사에는 관심없다는 듯 눈길도 주지않은채 그들끼리 뭔가 심각하게 논의하는 마르셀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7]와 플라톤 아카데미 일행 서있고, 당시 이탈리아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다던 토르나부오니 자매들도 오른쪽 상부서 지켜보고 있다.     더불어 즈카르야 오른쪽 앞쪽에는 검은색 옷을 입어 유난히 눈에 띄는, 당시 로마교황청의 비서의 최고위직으로 교황의 개인적 서신을 작성했었다는 포 지오브라 치올라니(Poggio Bracciolini)[8] 오히려 우리를 바라고 서있다.   
이 회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아는 화가였나 보다.
[5] 조반니 토르나부오니(Giovanni Tornabuoni),  이탈리아 상인이자 은행가로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교확 식스투스 4세의 로마지부 재무책임자 역할을 했다고 한다
[6] 프란시스코 사세티(Francesco Sassetti), 1421년에 이탈리아 프로렌스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은행가로 메디치은행 최고관리자 
[7] 마르셀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년에 이탈리아 피랜체 근교에서 태어나 후일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설립된 플라톤 아카데미를 이끌었다.    그리스 시대의 플라톤 저서를 라틴어로 번역하고 천문학과 점성술에 관심과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나중에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단다.
[8] 포 지오브라 치올라니(Poggio Bracciolini), 그의 나이 56세인 1434년에 약 3년간 피렌체에 살면서 기존 14명의 자녀가 있었는데도 새로 18세 소녀와 결혼해서 이후 5명의 아들딸을 더 낳고 살았다고 한다.
천사가 열받아 도끼눈을 뜨고 삿대질까지 하고 있다.   이걸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즈카르야, 너란 존재는...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중 일부 크롭 1480
<출처: 위키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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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명 없는 합장한 사람 중 '조반니 토르나부오니'가 있다.  신앙이 깊은지는 알수없지만 있는자의 눈빛만은 알겠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중 일부 크롭 1480
<출처: 위키미디아>
무리 중 오른편에 있는 '프란시스코 사세티'의 유난히 하얀 피부, 금발 머리, 가녀린 턱선이라니. 금융 전문가들이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중 일부 크롭 1480
<출처: 위키미디아>
이들 중 교장 선생님 포스가 '마르셀리오 피치노'다.  무리 중 맨 오른쪽.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중일부 크롭 1480
<출처: 위키미디아>
역시 '포 지오브라 치올라니'는 전체 인물 중 가장 줄충한 외모였다.  가운데 검은 옷을 입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중 일부 크롭 1480

<출처: 위키미디아>
'동방박사의 경배' 그림에 그린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본인의 모습은 좌측 3번째에서 찾을 수 있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동방방사의 경배' 중 일부 크롭 1488
<출처: 위키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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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카르야와 가브리엘 천사가 보고싶었는데, 오히려 눈앞에 500년전의 유럽 부자만 가득차 버렸다.   그래도 '도메니코 기를란다요'가 많이 챙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오케이.   

다만, 제사장으로 봉헌까지 드리면서 정작 천사가 찾아와 이야기하자 믿지못하는 즈까르야 같은 그런 자신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라는데 '설마요~'가 왠 말이냐.   천사 가브리엘의 화난 얼굴은 이 그림에서만 보는 걸로.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고 말하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준비된 믿음으로 천사의 웃는 얼굴만 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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