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3일 토요일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성모영보'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1]
[1] 루가복음 1장 26절

이렇게 등장한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예수님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전한다.   이 사건을 어넌시에이션(Annunciation)이라고 한다.

어넌시에이션?   어나운스'Announce'가 '알리다'라는 뜻으로, 뉴스 아나운서 할때 그 'Announcer'도 같은 단어다.   사전에 우리말로 '통보'로 되어있다.    왠지 느낌이 너무 건조하다 싶어 우리말로 찾아보니 '성모영보((聖母領報)'라고 되어있다.   더 어렵다.   한자를 보니 '성모님에게 명령을 알리다' 이런 정도의 뜻?

멀쩡한 처녀에게 애가졌다는 이야기를 '통보'하는 이 황당한 사건을 주제로 엄청나게 많은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다.   심지어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까지 손을 댔으니, 예나 지금이나 대단한 사건이라고 생각이 되었나보다.
다른 '성모영보' 그림들과 다르게 다소 무서운 가브리엘 천사와 왠지 당당한 성모님의 모습이다
레오나드로 다빈치, '성모영보' 1472
<출처: 구글아트>
많은 그림들 중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란 이름의 화가가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1617년에 이발사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화가였던 외삼촌에게 그림 공부를 시작한 후 주로 종교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부르주아와 귀족들이 좋아하여 제자[2]들도 많았던 화가다.[3]
[2] 19세기까지 유럽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스페인 화가였다고 한다.
[3] 역시 처음 듣는 화가이긴 하지만, 장 바티스즈 그리즈(Jean-Baptiste Greuze) 라는 프랑스 화가가 대표적인 제자였다고하는데, 많았던 건 제자뿐만 아니었다.   자식도 11명이었다!
화가들은 참 다양하게 자화상을 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이화가 그린 자화상은 3D아트다.   500년전에!
 에스테반 무리요, '자화상' 1670
<출처: 내셔널겔러리 홈페이지>
이 화가가 그린 '성모영보(Announciation)'라는 그림, 참 이쁘게도 그렸다.   다른 '성모영보'를 주제로 한 그림에 매번 나오는 비둘기, 백합등의 소품도 빠지지 않고 그려 넣은 화가의 성실함?도 좋지만, 양손을 가슴에 포개어 감싸고 눈을 지긋이 감은채 아래로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왠지 부끄러웃듯, 하지만 믿음에 찬 그 얼굴이 이쁘다.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는 천사 가브리엘도 신뢰의 눈길로 성모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역시도 이쁘게 그렸다.    도미니코 기를란다요가 그린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에서의 가브리엘과 이렇게 다르냐.
이그림, 작심하고 이쁘게 그리려고 했을꺼다.  맞지?
 에스테반 무리요, '성모영보' 1666-1660
<출처: 위키미디아>

가운데 그려놓은 하얀 비둘기를 중심으로 머리 위 많은 아기천사들의 표정들과 움직임도 귀엽고 이쁘다.   이그림, 이쁜 에너지를 뿜어대고 있다.

잠시 하얀 날개를 반쯤 접고, 공손히 앉아 성모님께 이야기하는 천사 가브리엘을 보려니 순간  가브리엘 천사가 여자인가? 라는 생각도 잠시.   천사에게도 성별이 있을거라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거냐.[4]
[4] 구약성서에서 다니엘이 천사 가브리엘의 등장을 '장정처럼 보이는 이가 내 앞에 서있었다' (다니엘서 8장 15절) 이렇게 표현한 구절이 있어서 남자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 문구도 장정처럼 보인다.. 인데 왜 남자라고 하는걸까.

그런데,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그림 중에는 스페인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3대 카톨릭 성당 중 하나인 세비야 대성당에 1656년에 그린 '성 안토니오의 환상(La vision de San Antonio de Padua)'가 있다.    높이가 6미터, 너비가 4미터가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캔퍼스화로 리스본의 성 안토니(Saint Anthony of Lisbon)이 무릎을 꿇고 천사들과 아기 예수님을 마주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의 평온한 모습과 달리 1874년 11월에 도둑을 맞았다.    사실, 훔친 행태는 차라리 강도에 가까웠다고 할까.   그림이 너무커서 오른쪽 안토니오 성인 부분만 칼로 도려내서 훔쳐갔다.    당시 세비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이 사건은 그러나 불과 두달도 채안된 1875년 1월에 다시 발견되었다.     대서양을 건너 뉴욕의 골동품점에서 그림을 알아본 주인은 이 조각난 명화를 50달러에 구입해서 뉴욕의 스페인 대사관 영사에게 전달했다고.   결국 한달 후, 스페인으로 다시 건너간 그림 조각을 기존 그림에 봉합하는 대 수술을 거쳐 오늘날 세비아 대성당에 가면 칼에 찔린 이 사연많은 그림을 볼 수 있다.    
이그림에도 아기천사들이 떼로 나온다.  그리고보니 이화가, 그림에 아기들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에스테반 무리요, '성안토니오의 환상' 1656
<출처: 위키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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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성모영보' 이야기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님을 만나서 건넨 첫 마디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이 말이 낮익다.   그렇구나.   몇 십년 기도하며 중얼대던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의 복되시며..."로 시작하던 바로 그 성모송의 기도 시작이었다.   
매번 기도문을 외면서도 이 기도문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몰랐다니... 하는 새삼스런 한탄과 함께, 왠지 구멍난 기도문의 의미가 다시 꿰맞춰 수술된 듯한 느낌.   
백년전 세비아 성당의 조각난 그림을 뉴욕에서 찾아 맞췄다는데, 난 오늘 성모송의 조각난 의미를 같은 화가가 그린 '성모영보'그림을 보고 맞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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