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2일 수요일

"아멘", 진실로 그러함을 굳건히 믿습니다

'그러할 지어다'란 뜻의 쌤족 언어(아랍어, 시리아어 등이 이에 속한다)라고도 하고[1].    '믿음'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인  'emuna'이 기원이라고도 한다.    예수님이'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라고 할때 '진실로'라는 발음이 그리스어로 '아민(αμην αμην)'이라고도 한다[2].
[2] 나무위키, https://namu.wiki/w/아멘

'신뢰할 만한'이란 뜻의 어근 'mn'에서 나온 히브리말로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럴 것입니다' 라는 뜻이며, 유태인이나 그리스도교도에 의해 종교적 문구나 기도, 성가등의 끝에 동의를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고 한다. [3]

'굳건하다', '신뢰하다', '안전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가 어원이라 '진실로', '확실히'라고 해석된다고 한다.   탈무드에서는맹세문에  '아멘'으로 응답한 사람은 자기입으로 읽은 것과 똑같다고 했다고 하고, 가브리엘 천서가 아기예수의 탄생을 예고했을때 성모님의 응답도 '아멘'이었다고 한다[4]

고대 이집트의 신들중에 눈에 보이지않는 것을 상징하며 공기의 속성을 갖는 신의 이름 중에 아몬 또는 아멘(Amon, Amen)이 있다고 한다. (이 신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신과 동일시 했고, 이집트 신들 중 최고의 신으로 여겨져 또다른 이집트 신인 라(태양신란다)와 이름을 함께 붙여서 '아문라' 라고 불렸다고 함)   아멘의 유래가 이 신의 이름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글들도 있지만, 이 신의 이름이 한참 후대에 형성된 것이라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5] 나무위키, https://namu.wiki/w/아멘

결국, 당신의 말씀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믿고, 맹세하고자 하는 굳건함의 표현이거나 그런 마음가짐으로 다잡을때 써야 하는 단어인가 보구나.   요즘들어 크게 다가오는 성경 구절을 생각하며 쓸 수 있는 멋진 말이었다.   "아멘"

성당, 십자가상
아버지 뜻대로.. 는 의지의 맹세가 아닐꺼다.   진실로 밉고, 그렇습니다!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아멘"
If it is possible, let this cup pass from me.   Nevertheless, not as I will, but as you will. "Amen" [6]
[6] 마테복음 26장 39절

2018년 8월 8일 수요일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의 '시온이 산으로 가는 길, 캐롤라인 여왕의 장례미사곡 HWV264'

예전에.
세상은 몇개의 음악으로 돌려 듣기를 하고 있구나는 생각할때가 있었다.

FM 라디오로 일부러 찾아 듣던 그 때.
영화음악이나 몇몇 가벼운 클레식 프로그램의 음악들이 어느 순간 익숙한 음악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때.

하지만, 요즘은 애플뮤직으로 그 많은 플레이리스트  중 어떤 것을 선택하던 정말이지 무궁무진한 음악들이 끝도 없다.   특히 재즈, 클래식 등의 쟝르는 SKT의 메론이나 KT의 지니와는 클라스가 다른 끝 모를 음악들을 쏟아내고 있다.   어차피 골라봐도 모를 음악들인지라 적절히 좋아할만한 이름의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해 듣던 중 꽤나 시크하고, 우울함이 쫙 깔린 음악이 귀에 들어온다.

The way of Zion do Mourn "Funeral Anthem for Queen Caroline, HWV 264"

찾아보니, 헨델이 1737년 12월에 영국의 캐롤라인(Caroline) 여왕 장례식을 위해 작곡한 장례미사곡이란다.   어째 시작되는 음이 낮익다 싶었는데, 모짜르트가 이곡의 첫소절을 주제로 자신의 레퀴엠곡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캐롤라인 여왕 초상화, 1727 Charles Jervas 작
출처: 위키피디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이 곡의 초반 합창은 구약성경의 예레미야 애가 1장 4절, 1장 11절, 2장 10절을 섞어 노래하고 있다고 한다.    "시욘을 향하는 길들은 비탄에 잠기고...  그의 온백성이 탄식을 하며... 머리를 땅에까지 내려뜨렸다" 
나머지 합창의 가사들도 욥기, 사무엘서, 다니엘서, 시편 등등의 구절을 섞어 만든 가사라고한다.[1] 
[1] 출처: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

첫소절의 멜로디만큼 제목의 '시온(Zion)' 이름도 낮익다.     생각해보니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시온(Zion)이란 이름이 여러번 불리었다.    영화에서는 가상세계인 매트릭스가 아닌, 실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시온이라고 불렀는데,  가상세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실제 인간들이 사는 곳의 명칭이었고, 이곳은 매트릭스 시스템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휴지통과 같은 장소였다.[2].  (그래서 시온을 말살하려고하는 시스템의 노력은 매트릭스를 부정하는 오류들로 꽉찬 시스템의 휴지통을 비우려는 노력이었다고)
[2]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시온
매트릭스 영화포스터 중 일부, 1999  워쇼스키남매 감독

하지만 실제로 시온이란 지명은 이스라엘 남서쪽에 있는, 약 760미터 높이의 산 이름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상징적으로 부르는 이름으로도 쓰인다고도 한다.  (우리가 백두의 겨례라는 둥, 북한산 정기라는 둥 하는 느낌으로 쓰는듯).    서울 북한산 높이가 830미터 쯤 된다고 하니까, 그보다 조금 낮은 정도의 산일듯 싶다.  (서울 남산은 260미터 정도라니 남산보다는 2~3배 정도 높은... 그럼 꽤 큰산인데?)
올리브산에서 촬영한 시온산 모습
출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시온산

그렇게 생각하니 메트릭스란 영화,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힘없고 그렇지만 세상을 구원할 또는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이 모여있는 예루살렘의 시온처럼, 영화에서도 시스템에 박해받지만 실제 인간을 구원할 '그'가 속한 무리들이 모여있는 곳을 시온이라고 불렀으니, 그 중의적인 구성이 멋지다.

하.여.튼...

영국의 사학자, 음악가인 챨스버니(Charles Burney, 1726-1814)는 1785년에 헬델의 전기를 기술하면서 이곡 'The way of Zion do Mourn'을 헨델이 작곡한 모든 곡들중에서 최고라고 평가[3]했다고도 하는데, 이게 그 정도였나.   어쨌든, 열대야의 오늘같은 더운 여름날 밤에 시크하고 우울한 기운을 독하게 뿜어대는 이런 장례 미사곡도 나름 괜찮지 싶다.   
[3] 출처: 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
찰스버니 초상, 1781. Joshua Reynolds작
 출처: 위키피디아

2017년 12월 23일 토요일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성모영보'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1]
[1] 루가복음 1장 26절

이렇게 등장한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예수님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전한다.   이 사건을 어넌시에이션(Annunciation)이라고 한다.

어넌시에이션?   어나운스'Announce'가 '알리다'라는 뜻으로, 뉴스 아나운서 할때 그 'Announcer'도 같은 단어다.   사전에 우리말로 '통보'로 되어있다.    왠지 느낌이 너무 건조하다 싶어 우리말로 찾아보니 '성모영보((聖母領報)'라고 되어있다.   더 어렵다.   한자를 보니 '성모님에게 명령을 알리다' 이런 정도의 뜻?

멀쩡한 처녀에게 애가졌다는 이야기를 '통보'하는 이 황당한 사건을 주제로 엄청나게 많은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다.   심지어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까지 손을 댔으니, 예나 지금이나 대단한 사건이라고 생각이 되었나보다.
다른 '성모영보' 그림들과 다르게 다소 무서운 가브리엘 천사와 왠지 당당한 성모님의 모습이다
레오나드로 다빈치, '성모영보' 1472
<출처: 구글아트>
많은 그림들 중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란 이름의 화가가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1617년에 이발사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화가였던 외삼촌에게 그림 공부를 시작한 후 주로 종교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부르주아와 귀족들이 좋아하여 제자[2]들도 많았던 화가다.[3]
[2] 19세기까지 유럽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스페인 화가였다고 한다.
[3] 역시 처음 듣는 화가이긴 하지만, 장 바티스즈 그리즈(Jean-Baptiste Greuze) 라는 프랑스 화가가 대표적인 제자였다고하는데, 많았던 건 제자뿐만 아니었다.   자식도 11명이었다!
화가들은 참 다양하게 자화상을 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이화가 그린 자화상은 3D아트다.   500년전에!
 에스테반 무리요, '자화상' 1670
<출처: 내셔널겔러리 홈페이지>
이 화가가 그린 '성모영보(Announciation)'라는 그림, 참 이쁘게도 그렸다.   다른 '성모영보'를 주제로 한 그림에 매번 나오는 비둘기, 백합등의 소품도 빠지지 않고 그려 넣은 화가의 성실함?도 좋지만, 양손을 가슴에 포개어 감싸고 눈을 지긋이 감은채 아래로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왠지 부끄러웃듯, 하지만 믿음에 찬 그 얼굴이 이쁘다.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는 천사 가브리엘도 신뢰의 눈길로 성모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역시도 이쁘게 그렸다.    도미니코 기를란다요가 그린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에서의 가브리엘과 이렇게 다르냐.
이그림, 작심하고 이쁘게 그리려고 했을꺼다.  맞지?
 에스테반 무리요, '성모영보' 1666-1660
<출처: 위키미디아>

가운데 그려놓은 하얀 비둘기를 중심으로 머리 위 많은 아기천사들의 표정들과 움직임도 귀엽고 이쁘다.   이그림, 이쁜 에너지를 뿜어대고 있다.

잠시 하얀 날개를 반쯤 접고, 공손히 앉아 성모님께 이야기하는 천사 가브리엘을 보려니 순간  가브리엘 천사가 여자인가? 라는 생각도 잠시.   천사에게도 성별이 있을거라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거냐.[4]
[4] 구약성서에서 다니엘이 천사 가브리엘의 등장을 '장정처럼 보이는 이가 내 앞에 서있었다' (다니엘서 8장 15절) 이렇게 표현한 구절이 있어서 남자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 문구도 장정처럼 보인다.. 인데 왜 남자라고 하는걸까.

그런데,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그림 중에는 스페인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3대 카톨릭 성당 중 하나인 세비야 대성당에 1656년에 그린 '성 안토니오의 환상(La vision de San Antonio de Padua)'가 있다.    높이가 6미터, 너비가 4미터가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캔퍼스화로 리스본의 성 안토니(Saint Anthony of Lisbon)이 무릎을 꿇고 천사들과 아기 예수님을 마주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의 평온한 모습과 달리 1874년 11월에 도둑을 맞았다.    사실, 훔친 행태는 차라리 강도에 가까웠다고 할까.   그림이 너무커서 오른쪽 안토니오 성인 부분만 칼로 도려내서 훔쳐갔다.    당시 세비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이 사건은 그러나 불과 두달도 채안된 1875년 1월에 다시 발견되었다.     대서양을 건너 뉴욕의 골동품점에서 그림을 알아본 주인은 이 조각난 명화를 50달러에 구입해서 뉴욕의 스페인 대사관 영사에게 전달했다고.   결국 한달 후, 스페인으로 다시 건너간 그림 조각을 기존 그림에 봉합하는 대 수술을 거쳐 오늘날 세비아 대성당에 가면 칼에 찔린 이 사연많은 그림을 볼 수 있다.    
이그림에도 아기천사들이 떼로 나온다.  그리고보니 이화가, 그림에 아기들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에스테반 무리요, '성안토니오의 환상' 1656
<출처: 위키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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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성모영보' 이야기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님을 만나서 건넨 첫 마디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이 말이 낮익다.   그렇구나.   몇 십년 기도하며 중얼대던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의 복되시며..."로 시작하던 바로 그 성모송의 기도 시작이었다.   
매번 기도문을 외면서도 이 기도문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몰랐다니... 하는 새삼스런 한탄과 함께, 왠지 구멍난 기도문의 의미가 다시 꿰맞춰 수술된 듯한 느낌.   
백년전 세비아 성당의 조각난 그림을 뉴욕에서 찾아 맞췄다는데, 난 오늘 성모송의 조각난 의미를 같은 화가가 그린 '성모영보'그림을 보고 맞춰본다.

2017년 12월 19일 화요일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1480

눈을 뜨니 불안감에 다시 잠은 안오고...
그래서 잠자리에 있기가 왠지 불안해서 거실로 나와 뒤척이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이런걸 공황 장애(지금은 TV에서도 많은 연애인들이 이런 표현을 쓰던데, 그땐 이런 증상이 병인지도, 뭐라고 하는지도 몰랐어... 그냥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이런 증상이 계속되자 새벽에 잠이 깰까하는 걱정으로 잠자리가 두려웠던 때였다.   이후 어떻게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간혹 오늘처럼 새벽에 잠이 깨면 그때의 불안했던 기억이 문득 스친다.

하지만 오늘 새벽, 잠에서 깨자마자 정신도 맑고 기분도 좋다.   '뭐지, 이런 느낌?'  싶으며 뒤척이다가 일어났다.   언젠가 '새벽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가장 큰 은총이다'라는 공지영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며 먼소리냐 싶었는데, 막상 새벽에 눈이 떠지자 뜬굼없이 그 기사 생각이 났다.    

춥고 캄캄한 새벽에, 처음으로 새벽 미사를 나섰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 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의 아들을 낳아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중략)...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1]
[1] 루카복음 1장 5절~25절

오늘 복음말씀이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니 슬슬 예수님의 탄생 준비를 하나보다 싶었다.   그래, 이제는 그 유명한 세레자 요한이 늙고 아이가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는 기적같은 일이었다는 밑밥을 깔때가 되었겠구나... 싶다가, 놀랐다.   "에이~ 설마요" 하는 듯한 즈카르야의 반응에 신비주의에 싸여있어야 할 것 같은 이 천사, 느닷없이 소속과 임무를 까고 심지어 해꼬지까지 해버리고 가버리는 거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이런 상황은 뭘까 싶었는데 생각났다.   이건 몰래 술먹고 노는걸 훔쳐보다가 들켰다고 그냥 보내도 될껄 혹붙이고 가는 도깨비랑 뭐가 다른거냐.

도메니코 기를란다요[2], 1449년에 태어난 이탈리아 화가다.    금속 화환을 만드는 아버지에게서 금 세공사일을 배우며 가계를 방문한 손님들의 그림을 그리다 그 솜씨가 좋아 피렌체로가 그림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그림의 구도보다는 디테일한 표현이 더 좋은화가로 피렌체에서 잘나가는 화가였다고 도 한다.    그런데 이 화가, 본인의 그림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있다.   미켈란젤로를 가르쳤다는 거다.(그는 미켈란젤로를 화가보다는 훌륭한 조각가로 평가했다고 한다).   
[2] 도미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르네상스 시대에 같이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전기를 써 더욱 유명해진 조르조 바사리[3] 는 기를란다요의 많은 작업과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동시대에 가장 훌륭한 주인공 중 한명이라 평가하기도. (그런데 신기한 나무위키를 찾아보면 제자와 비교당하면서 위키피디아 등에서 많이 씹혔다고 써있어 찾아봤는데, 그런 내용은 어디?)
[3] 조르조바사리(Giorgio Vasari), 1511년에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태어나 미켈란젤로의 친구이자 제자(어쩌면 그래서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에 대한 평가가 좋았을지도...) 로 메디치가문의 원조를 받으며 예술활동을 했다.   1550년에 르네상스 예술가 200여명의 삶과 작품을 기록한 '미술가 열정(Le Vita De' Piu Eccellenti Architetti, Pittori, et scultori)'[4]을 출판해서 미술사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4] 국내에는 1986년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이라는 제목으로 초역, 출판되었고, 2000년에 '이태리 르네상스의 미술가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한명출판사에서 재간행되었으나 모두 품절이라고 하는데 확인은 못해봄

영화의 감독 키메요 출연처럼, 이 그림을 그리며 도메니코 기를란다요는 자신의 자화상을 넣었단다.  어디?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동방박사의 경배' 1488
<출처: 위키미디아>
자신의 자화상을 늦은 나이에 그렸구나... 이래서 어르신들이 사진을 안찍으려 하는건지도.
조르조바사리 작, 자화상1550~1567 추정
<출처: 위키미디아>

이 미켈란젤로의 스승이 1480년에 가브리엘 천사에게 해꼬지 당하는 즈카르야의 모습을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라는 이름으로 그렸다.    흰 백발과 수염으로 인자해 보이지만 무덤덤한 표정을 한채 열심히 성물을 휘두르며 무심한듯 천사를 바라보는 즈카르야의 표정과, 이런 즈카르야를 매의 눈으로 째려보며 손가락질까지 하고 있는 천사 가브리엘의 모습이 미소짓게 한다.    즈카라야가 분향중인 성소의 건축물 조각과 황금으로 표현된 분향대의 모습에서 참 화려하게도 그려놨구나하며 더불어 천사의 날개도 흰색만 있는건 아닐 수 도 있겠구나(게다가 이 천사의 날개는 겉면은 황금색, 뒷면은 녹/적/황토색이 섞여있다!) 하는 생각도 잠시, 그림 주변에 떼로 서있는 이들은 뭔가 싶다.

살펴보니 조반니 토르나부오니(Giovanni Tornabuoni)[5]라는 당시 유명한 피렌체의 재벌과 그 일행이 그림의 중앙 왼쪽에 무리져서 즈카르야를 쳐다보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프란시스코 사세티(Francesco Sassetti)[6]라는 역시 당시 유명한 메디치가문의 은행가와 그 일행도 무리져 있다.        뿐만아니다.   왼쪽 아래쪽에는 즈카르야의 제사에는 관심없다는 듯 눈길도 주지않은채 그들끼리 뭔가 심각하게 논의하는 마르셀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7]와 플라톤 아카데미 일행 서있고, 당시 이탈리아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다던 토르나부오니 자매들도 오른쪽 상부서 지켜보고 있다.     더불어 즈카르야 오른쪽 앞쪽에는 검은색 옷을 입어 유난히 눈에 띄는, 당시 로마교황청의 비서의 최고위직으로 교황의 개인적 서신을 작성했었다는 포 지오브라 치올라니(Poggio Bracciolini)[8] 오히려 우리를 바라고 서있다.   
이 회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아는 화가였나 보다.
[5] 조반니 토르나부오니(Giovanni Tornabuoni),  이탈리아 상인이자 은행가로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교확 식스투스 4세의 로마지부 재무책임자 역할을 했다고 한다
[6] 프란시스코 사세티(Francesco Sassetti), 1421년에 이탈리아 프로렌스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은행가로 메디치은행 최고관리자 
[7] 마르셀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년에 이탈리아 피랜체 근교에서 태어나 후일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설립된 플라톤 아카데미를 이끌었다.    그리스 시대의 플라톤 저서를 라틴어로 번역하고 천문학과 점성술에 관심과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나중에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단다.
[8] 포 지오브라 치올라니(Poggio Bracciolini), 그의 나이 56세인 1434년에 약 3년간 피렌체에 살면서 기존 14명의 자녀가 있었는데도 새로 18세 소녀와 결혼해서 이후 5명의 아들딸을 더 낳고 살았다고 한다.
천사가 열받아 도끼눈을 뜨고 삿대질까지 하고 있다.   이걸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즈카르야, 너란 존재는...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중 일부 크롭 1480
<출처: 위키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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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명 없는 합장한 사람 중 '조반니 토르나부오니'가 있다.  신앙이 깊은지는 알수없지만 있는자의 눈빛만은 알겠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중 일부 크롭 1480
<출처: 위키미디아>
무리 중 오른편에 있는 '프란시스코 사세티'의 유난히 하얀 피부, 금발 머리, 가녀린 턱선이라니. 금융 전문가들이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중 일부 크롭 1480
<출처: 위키미디아>
이들 중 교장 선생님 포스가 '마르셀리오 피치노'다.  무리 중 맨 오른쪽.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중일부 크롭 1480
<출처: 위키미디아>
역시 '포 지오브라 치올라니'는 전체 인물 중 가장 줄충한 외모였다.  가운데 검은 옷을 입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즈카르야에게 발현한 천사' 중 일부 크롭 1480

<출처: 위키미디아>
'동방박사의 경배' 그림에 그린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본인의 모습은 좌측 3번째에서 찾을 수 있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동방방사의 경배' 중 일부 크롭 1488
<출처: 위키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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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카르야와 가브리엘 천사가 보고싶었는데, 오히려 눈앞에 500년전의 유럽 부자만 가득차 버렸다.   그래도 '도메니코 기를란다요'가 많이 챙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오케이.   

다만, 제사장으로 봉헌까지 드리면서 정작 천사가 찾아와 이야기하자 믿지못하는 즈까르야 같은 그런 자신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라는데 '설마요~'가 왠 말이냐.   천사 가브리엘의 화난 얼굴은 이 그림에서만 보는 걸로.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고 말하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준비된 믿음으로 천사의 웃는 얼굴만 보는 걸로.

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파올로 베로네세의 '예수와 백인 대장'

파올로 베로네세 작, '예수와 백인 대장(Jesus and the Centurion)' 1571




중학교 시험은 초등학교 때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길어진 수업 시간과 엄해진 선배들의 눈빛도 그랬지만 시험을 몇일간 나눠서 본다!!   이 얼마나 벼락치기로 준비하기 좋은 시스템인가.   몇 과목의 시험을 끝내고 집에 와도 12시 전후.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오후의 집에서 노닥거리는 시간이 좋았다.(시험이란 스트레스는. 결국 밤샘으로 미루다가 시험 점수야 엉망이 되었지만)

더군다나 시험이 끝난 마지막 날에는 학교에서 영화관에 보내준다!!!
전체 학생이 가는 것도 아니고, 가고 싶은 친구들과 가라고 할인권을 줬던 거지만, 덕분에 부모님없이 친구들끼리만 갔던 학교 부근 영화관에서 본 첫 영화, 벤허.(이때 터미네이터도 볼 수 있었는데, 학교에서 나눠준 건 벤허 할인표라 투덜댔던 기억이...)


영화 벤허(1959년작) 포스터
<출처: 위키백과>


무슨 내용인지 보다는 친구들과 본다는 것이 신이났던 그 영화의 어마어마한 스케일도 놀랍고, 유대인 귀족 '벤허'의 과도한 인생 변화도 놀랍지만(나중에 영화 글레디에이터 주인공도 못지않지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현실의 변화는 더 심한 것 같아), 친구이자 경쟁자로 나왔던 로마인 귀족 '멧살라'의 간지도 장난이 아니었다. 
붉은망토와 깔 맛춤한 투구의 깃털은 머리통 보다도 크다
<출처: 영화'벤허'중 로마 귀족 멧살라 (스티븐보이드 역) >

그런데 이 멋진 멧살라가 맡았던 역할이 로마장교 백인 대장이다.   로마군의 핵심 전력은 갑옷으로 무장하고 칼과 창, 방패를 들고 싸우던 중보병이란다.   영화에서 한 줄에 10여명씩 뒤로 6~10줄 정도의 사각형 대형을 갖추고 싸우던 그들.    이들 중보병의 제일 앞 줄에는 전투 경험이 적은 젊은이(이들은 '하스탈리'[1]라고 부른단다)들이, 중간열에는 굳건히 대열을 지킬 수 있는 30대의 경험있는 보병인 '트린키페스'[2]가, 뒤쪽은 40대 이상의 전투 베테랑인 '트리아리'[3]들이 버티고 싸웠다고 한다.   이때 백여명 정도하는 한무리 중보병을 지휘하는 대장이 바로 백인 대장이다.
[1] Hastati, 어려서 팔팔하고 저돌적이고, 겁도많고 까불대다가 도망도 자주가서 맨앞에 세웠단다.   무장은 빈약해서 가슴짝에 청동판 하나만 걸쳤다고 하는데, 젊음을 무기로 싸웠군
[2] Principes, 로리카(Lorica)라고 하는 단단한 가죽으로 만든 상체를 보호하는 갑옷으로 약간의 금속장식이 붙어 있는 튼튼해 보이는 가죽옷?을 입고 하스타(Hasta)라고 부르는 짧은 창을 들고 앞열이 무너져도 굳건히 버티는 핵심 전력이었단다
[3] Triarii, 헬멧에 3개의 깃털을 달고 싸운 최고 고참병으로 구성되었다.   음... 이런 구성, 무척 효율적일 것 같은데 좀 짠하다
맨아래가 앞쪽으로 붉은색 순서대로 하스탈리, 트린키페스, 트리아니가 정렬한다
<출처: jefffletcher.deviantart.com>

지금이야 군대에 가면 군화, 총, 탱크 등을 국방부에서 주지만 로마에서는 자기가 탈 말과 사용할 칼, 갑옷등은 자기돈으로 샀다.   그러다 보니 로마의 중보병인 '벨리테스'는 평민 이상의 어느정도 재산이 있어야 가능했다.  이들 중보병 병사들은 자신들을 통솔하는 백인 대장이 쫌 아니다 싶으면 교체를 요청하기도 했고, 백인 대장도 그 직책을 맡았는지 또는 몇 번에 걸쳐 임명 받았는지가 로마 군내에서 가장 큰 명예 중 하나였다고 한다.   앞장서서 싸우다 보니 그만큼 백인대장의 사상률도 일반병사보다는 훨씬  높아 율리우스 케사르가 '주사위는 던저졌다'며 로마로 들어가 구데타를 하기에 앞서 부와 권력을 거머쥔 갈리아 원정에서는 막강 12군단이 패전하며 백인 대장 전원이 먼저 죽는 경우[4]도 있었다고 하니 이 백인 대장이라는 자리, 동료와 전우에 대한 절대적 애정과 믿음이 필요한 자리다.  영화와 다른 건 실제로 백인 대장은 로마 귀족보다는 평민[5] 출신들이 더 많이 맡았다고.
[4] 전쟁에서 초급장교 사망률이 높은건 좀 일반적인듯.   6.25 전쟁 중 육군 종합학교에서 임관된 초급 장교 7.3천명 중 1.3천명은 전사, 2.3천명은 부상으로 반 정도의 사상률이었다고 한다.   젊음의 이름으로 흘린 피와 헌신에 애도.
[5] 평민도 로마 시민이다.   초기 로마에서 귀족들의 특권과 경제적 독식에 맞서 전쟁거부 등의 파업?활동으로 평민의 권리를 위한 호민관이란 직책과 평민 집회가 생기고 법적으로도 평민과 귀족의 차이가 제거된다

   물론 최하급 장교인지라 위로 켭켭히 별들이 쌓여있었겠지만, 최강 전투력을 몸에 익히고 부대원들과 부디끼며 신임을 받아야만 했던 이들 백인 대장들은 성경에도 등장한다.   미사 중 영성체를 하기에 앞서 되뇌였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라" 기도말의 주인공, 그 믿음의 주인공이 그들이다.    같은 사람인지는 모르지만(나무위키에서는 동일인이라는 설이있다고 소개), 성탄절마다 전례시간 중 예수님 죽음의 순간에 탄식조로 외치는 "그는 진실로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로 외치는 목소리의 주인공, 그도 백인 대장이다.   

예수님이 사시는 마을, 또는 예수님의 집이 있던 곳이라고 불렸다는 '카파르나움'[6]에서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아래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는 백인 대장 이야기[7]는 그 믿음도 돋보이지만, 전우와 동료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종도 염려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함이 보여 더욱 멋지다.
[6] 카파르나움은 베드로가 물고기를 낚았다는 갈릴레아 호수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예수님의 기적이 이곳에서 다량 이뤄졌다고 한다.   아쉬운 건 이런 기적이 이뤄진 땅임에도 그 유명한 소돔과 고모라의 소돔보다도 더 예수님께 욕을 먹었다는 것.  
"너 카라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 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이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있을 것이다(마태복음 11장 23절)"라니.   실제로 이곳은 이후 서기 614년에 페르시아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894년 발굴작업에서 베드로 집터등을 발견했다고.
[7] 마태복음 8장 7~10, 물론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이 '가거라, 네가 믿는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자 바로 그시간에 종이 나았다는 이야기로 서프라이즈!
카파르나움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다.  이곳까지 로마에서 백인대장이 왔다니 역시 대단한 로마.
<출처: 구글지도>


   이 성경 속 백인대장을 그린 그림 중 하나가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라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8]에 있다.   입장료만 거의 2만원에 가까운(13유로, 2015년)에 이 미술관은 1819년(같은해 미국에서는 첫 경제공황이 있고, 일년전인 1818년 정약용이 목민심서 쓴 그 즈음)  문을 연 후 1868년 이사벨라 여왕때 국유화되어 3천점 이상의 회화가 전시되어 있다는 역대급 미술관이다.
[8] 홍페이지: https://www.museodelprado.es
프라도미술관 전경
<출처: 프라도미술관 홈페이지>

이곳에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가 1571년에 그렸다는 '예수와 백인대장'이라는 유화가 있다.  하지만 이 그림 속 백인 대장은 자신 종의 치유를 비는 강인한 로마군 장교가 아니다.   본인이 병들어 수척해 있어 자신의 병을 치유해 달라고 애쓰는 것 같아 보여 아쉽다.   하지만, 그림 속의 오고가는 많은 시선들 중에 유일하게 예수님의 자비로운 눈길과 눈맞춤 하고 있는 백인 대장의 눈동자에서 당신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보인다.   이런 믿음, 부럽다.
백인대장의 저 애절한 눈빛이란... 옆의 제자를 만류하며 그를 바라보는 예수님과 눈맞춤의 순간이다
파올로 베로네세 작, '예수와 백인대장' 중 일부 크롭, 1571
<출처: 위키미디어>




화려한 색깔과 주글 주글한 옷주름에서의 극명한 명암, 여기저기 번득이는 빛들과 많은 군인, 시종으로 가득 차 화려해 보이는 이런 그림은 '파올로 베로네세'가 활동했던 그 동네 화가들의 특징이다.   베네치아는 상업이 활성화된 항구도시로 북유럽은 물론 아시아 여러 지역과 활발한 교역의 영향으로 당시에 이탈리아 피렌체와 함께 르네상스 미술과 문화가 번영했다.   



이곳에서 '파올로 베로네세'는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조각 공부를 하던 중 그림에 소질을 보여 '안토니오 바딜레나'라는 화가 밑에서 그림을 공부 하고, 나중에는 그 스승의 딸과 결혼해서 장식화, 성화등을 주로 그리며 당대 최고 인기 화가 중 한 명 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 말년에는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종교재판 이단 심문소에 불려갔다.  

무슨 그림때문일까 싶었는데, 그가 1573년에 그린 '최후의 만찬'이란 그림 때문.     당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큰 불이 일어나서, 베네치아에 있던 도미니크 수도회도 당대 최고 화가 중 한명인 타치아노[9]가 그렸다는 그림이 소실된다.   이 불타버린 그림 이름이 '최후의 만찬'.   수도회는 역시 당시 인기가 높았던 '파올로 베로네세'에게 같은 이름의 그림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 화가, 제목에 어울리지 않게 온갖 시종과 광대와 독일군들이 우글대고 식탁에서는 고기를 뜯고 있는 그림을 그려놨다.   문제는 도미니크 수도회가 철저한 원칙주의 수도회로 지금도 세계 4대 카톨릭 탁발(수도사들이 머리를 깍는다!!) 수도회로 유명한 곳인터라, 결국 이런 그의 그림은 수도회에서 인수가 거부될뿐 아니라 심지어 이 그림으로 그는 신성모독 협의를 받아 종교재판 이단 심문소[10]에 불려가게 된다.
[9] 타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한창 성행했을때의 화가로 경제적으로도 엄청나게 성공한 화가.   당대 최고 재벌가인 데스몬 가문, 곤차가 가문, 파르네세 가문등에서 그의 그림을 모으는데 열을 올렸다고 한다.  지금도 그가 1599년에 그린 유화 '다이아나와 악테언'은 런던 내셔널갤러리와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에서 2009년에 약 740억원으로 공동구매하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중 하나가 됐다. 
[10] 종교재판 이단 심문소라니!  이런 곳은 13세기 당시 교황인 그레고리오 9세[11]가 도미니코 수도회에 해당 업무를 위임하여 처음 설치되어 운영되다가 1858년에 마지막 종교재판 후 폐쇄되었다.
[11] 그레고리오 9세는 178대 교황으로 이탈리아 아니니 지역에서 1145~1150년에 태어나 1227년~1241년동안 교황이었다고 한다.(그럼 80세에 교황이 되서 90세가 넘어 돌아가셨다는 건데, 그시대에 이런 나이라니... 놀랍다!)   당시 프랑스와 스페인 지역에서 이단으로 평가되던 무리들이 무력을 사용하는데 놀라 이단 심문소를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이때만 해도 심문소에서 고문은 허가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저나 이 분, 이단 처리도 골아팠을텐데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라드리히 2세와 이탈리아 영토에 대한 통치권을 이유로 몇차례 전쟁도 치룬 걸 보면 연세에 비해 쫌 팔팔했던 듯. (서로 군대보내 싸우고... 교황은 황제를 이단으로 심판하기 위해 시노드를 열고, 황제는 시노드에 참석하는 종교인들을 막을려고 배를 침몰시키거나 나포하는등... 난리도 아니었단다)
의도하지 않은 악테언의 기웃거림에 놀란 요정의 살색이 난무하는 이 그림이 750억원 이란다.
타치아노 베첼리오 작, '다이나와 악테언', 1599
<출처: Google Art & Culture>
이단 심문소에서 신성모독으로 지적한 것은 성경에 없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해서 '최후의 만찬'과는 다른 분위기가 되어버렸고, 피흘리는 난장이, 앵무새를 든 광대등은 물론 종교개혁으로 당시 카톨릭과 껄끄러웠던 독일의 군복을 입은 병사들을 주변에 빼곡히 그려놓았다는 것.   수도원에서 보기에는 이순신 장군 영정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주변에 노닥이는 왜군들을 쫘악 그려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지도.    게다가 지금은 타버려 알수없지만 기존에 '타치아노 베첼리오'가 수도원에 그렸었다는 '최후의 만찬' 이란 그림은 아마도 1559년에 그가 그린 그림 '그리스도의 매장'을 보건데 매우 엄숙하고 장중하게 그려져 있지 않았을까 싶어(물론, 어디에도 그렇다는 자료는 없다.  그냥 근거없는 상상) 상대적으로 더 큰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절망과 슬픔이 어두운 빛을 타고 흐르는 이 엄숙한이 주는 몰입감이란!
타치아노 베첼리오 작, '그리스도의 매장' 1599
<출처: 위키미디어>

하여간 이 재판에서는 그려져 있는 어릿광대와 독일병사 등은 덧칠해서  완전히 없애버리고, 막달라 마리아[12]를 그려 넣는 것으로 명령을 내리고 이 조건을 수용하는 것으로 석방이 되었는데, 이 화가는 그림의 이름을 '최후의 만찬'에서 '레위 집안의 만찬'으로만 바꾸고, 그림에는 다른 첨삭을 하지 않았다.   이때 재판에 나간 파올로 베로네세는 "화가는 시인이나 미치광이가 누리는 것 과 똑같은 자유를 갖는다"며 작가로써의 상상으로 그렸을 뿐 다른 신성모독의 의도는 없었다는 변론[13]을 했다하는데 멋진거냐, 무모한 거냐. 
[12] 최후의 만찬인데 막달라 마리아를 그려 넣으라고?!?   이건 좀더 알아봐야 할 듯.   거의 다빈치 코드 급 클루다.
[13] 생각컨데 당연한 말을 했다 싶지만, 비슷한 논란이 요즘도 있는 걸 보면 왠지 그때가 더 융통성이 있었던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희희덕 거리는 왜구를 그려놓은 이순신 영정을 보고 뭐라고 하니까 이건 이순신 영정이 아니고 그냥 장군 코스프레 그림이야 하며 끝내도 모두들 만족해 하는 것과 같은 시츄에이션? 
최후의 만찬을 왁자지껄한 식사로 표현하고 싶을 수 있겠지만, 이걸 중세시대에?
파올로 베로네세 작, '레위집안의 잔치' 1573
<출처: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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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겨울의 어느날 오후.
예전의 시험 기간 중 여유로운 오후를 그리며 찾아 본 벤허의 '멧살라'와 같은 간지는 없지만,
'파올로 베로네세'의 알 수 없는 자신감에 외쳤던 화가로서 자유를 찾아보고,
그의 '예수와 백인 대장' 그림 속에서 반짝이는 백인 대장의 소망과 믿음의 눈길에 함께 눈을 맞춰 본다.

"한 말씀만 하소서, 저의 영이 곧 나으리라"
그의 기도도 잊지않고 함께 따라해본다